<대법원 청사 전경 포토>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지난 10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진석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으나 법정구속은 하지않았다. 이어 검찰이 구형한 벌금 500만원보다 훨씬 무거운 실형이 선고되자 여당을 중심으로 박병곤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문제삼기 시작이 논란이 되고있다.
국민의힘과 조선일보 등은 박 판사가 고등학생 때인 20여 년 전 작성한 인터넷 블로그 글, 법관 재직 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근거로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주장을 폈다. 박 판사의 ‘친야’ 성향이 정 의원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식이다.
이에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3일 입장문을 통해 “최근 현직 국회의원 관련 형사사건의 제1심 판결 선고 이후 재판장의 정치적인 성향을 거론하며 해당 판결과 재판장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제기되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에 대해 판결 내용과 무관하게 과도한 인신공격성 비난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개별 판결을 두고 불거진 장외 논란에 법원이 이례적으로 직접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박 판사에 대한 공격이 수그러들지 않자 대법원은 16일 그가 법관 임용 후 SNS에 작성한 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 등이 입맛에 따라 이념적 딱지를 붙여가며 판사 개인을 공격하는 일은 처음이 아니다. 조선일보는 2011년에도 한·미 FTA를 비판하는 글을 쓴 최은배 판사의 SNS 글을 끄집어내 공격했다. 특히 최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진보 성향’을 문제삼았다. 이를 계기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판사의 SNS사용 지침을 만들자 일선 판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최 판사는 당시 “지름 10㎝ 정도 퍼져나갈 소문이 특정 언론의 보도로 1m 이상 퍼져나간 양상”이라며 “이런 보도 행태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때 만들어진 대법원 윤리위원회 권고의견 7호 ‘법관이 SNS를 사용할 때 유의할 사항’에는 “법관이 SNS상에서 사회적·정치적 쟁점에 대해 의견표명을 하는 경우에도 자기절제와 균형적 사고를 바탕으로 품위를 유지해야 하고, 공정한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를 야기할 수 있는 외관을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부 보수언론은 박 판사가 이 지침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지금 박 판사의 ‘정치 성향’을 문제삼는 국민의힘과 조선일보는 과거 법관의 독립을 심각하게 침해한 신영철 전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논란, 대법원이 법관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법농단 사건은 외면했다. 사법농단의 한 축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상고법원과 인사제도, 대법관 구성 등에 목소리를 내자 법원행정처가 연구회를 와해하려 한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중앙지검 3차장일 때 법관 독립을 해쳤다며 기소했다.
여야를 불문하고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판결과 판사의 정치 성향을 도마에 올리는 것은 문제라고 법조계에선 지적한다. 법관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적 입장을 가질 수 있고, 그런 정치적 입장이 재판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없는데도 꿰어맞추기 식으로 비판하는 건 법관의 독립을 흔드는 행태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판사는 “판사도 개인의 성향이 있겠지만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한다”며 “성향을 외부에 알렸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판결이 정치적으로 치우쳤다고 매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Reported by
권오춘/국회출입사진기자
손경락/법률전문기자
김홍이/뉴스탐사기자/전청와대출입기자